[6/27 논평] 외/이주화된 노동자들의 죽음을 추모하며
화성 리튬 공장의 화재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참사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가장 먼저 목숨을 잃은 노동자와 그 가족, 주변 지인들께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배터리를 생산하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 노동자였다는 사실은 그동안 숨어있던 많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소방서는 화재 참사 피해자의 대부분이 “용역회사에서 필요할 때 파견받아 쓰는 일용직” 이주 노동자로, 이들이 공장 내부 구조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더 컸다고 밝혔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가 ‘위험의 이주(노동자)화’ 되고 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다.
‘위험의 외주화’는 오랜 시간 민간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용’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다. 정부와 자본은 그동안 노동의 원하청 체계를 강화하며 정규직 노동자 대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다양한 비정규 노동자 직군을 만들어냈다. 자본 입장에서는 값싼 비용으로 노동력을 ‘쓰는’ 것이지만, 산업재해와 재난 피해, 자유로운 해고의 일차적 대상이 되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걸어야만 한다. 화성 리튬 공장 참사는 이런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차별화된 노동 체제의 맨 밑단에서 각종 산업재해와 재난의 피해를 보다 집중적으로 받는 것은 이주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90년대 중후반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업종에서 일할 해외 노동자의 적극적 ‘수입’을 계기로 점점 늘어나 이제는 이주 노동 없이는 한국의 경제가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들의 기여를 고맙게 여기는 대신 이들을 짓밟고 쫓아내고 죽인다. 이들의 착취와 죽임을 자양분 삼아 끝없는 성장을 추구한다. 이번 참사가 보여준 또하나의 참담한 현실이다.
한편 이번 참사가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에너지 전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사고는 1차 전지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기자동차의 밧데리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와 짝을 이루는 에너지저장장치(ESS)의 2차 전지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핵심 소재로 리튬을 다뤘다는 점이 화재가 참사로 악화되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향후 에너지전환의 가속화와 함께 리튬 전지 생산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예사롭게 볼 수 없다. 리튬 전지 제조 공장에서 발생한 이번 참사는 에너지 전환의 사회적 기초, 즉 노동 현장의 위험성을 조명해주고 있다.
나아가 이 참사의 희생자들 대부분이 이주노동자였다는 사실로부터, 에너지전환의 사회생태적 차원에 관해 우리의 시선이 더욱 민감해질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폰에서부터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을 비롯해, 코발트, 주석 등의 여러 광물들은 여전히 땅에서 채굴되어야 하고 제련과 가공 등의 공정을 필요로 한다. 이 모두 생태파괴와 온실가스 배출을 수반한다. 지금처럼 재생에너지로 전환이 이뤄진다면, 기후생태위기를 가져온 파괴적, 차별적, 착취적 관계는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현장을 찾은 대통령은 ‘대체 진화수단, 화학물질 적재 방법과 위치, 화재시 대피요령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행안부는 ‘안전점검과 외국인 화재안전교육 강화’를 약속했으나, 이런 ‘사후 약방문’식 대처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기업의 이윤과 경제성장을 앞세우는 사회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참사는 또다시 반복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전환도 차별과 착취를 강화하고 ‘이익의 사유화, 피해의 사회화’라는 슬픈 현실을 연장시킬 뿐이다. 이점을 기억하고 싸우는 것이 화성 리튬 공장 참사의 교훈이자, 참사 피해자들에 우리 사회가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