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논평] 용산참사 15주기, 기억은 철거되지 않는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을 경찰특공대가 강제 진압하다가 건물 옥상 망루에 불이 붙어 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1명이 숨지는 용산참사가 발생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5년이 흘렀다. 대통령은 여전히 세입자들과 주거 빈곤층이 아니라 토건·투기세력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2009년에 비해 별로 나아지지 않은 현실을 돌아보며 모든 세입자들의 정주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위한 결의를 다지고자 한다.
사건 후 검찰은 경찰 진압에 대해서는 모두 불기소 처분해 면죄부를 주었고, 화재원인에 대한 특정 없이 철거민 20명을 기소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현장을 지키던 철거민 5명은 경찰의 무리한 과잉진압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되어 공동정범으로 기소된 후 3년 9개월을 복역하고, 이후에도 몸과 마음의 트라우마로 고통받아왔다. 안타깝게도 10주기였던 2019년에는 이들 중 한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한 달도 안 돼 일방적인 기소를 하며, 당사자들에게 수사 자료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그러나 이듬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이 공권력 행사에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이 인정된다”며 과잉조치라고 결론내렸고, 2019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당시 경찰의 위법한 진압행위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며 검찰에 “철거민과 유족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당시 진압작전을 최종 승인한 인물이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다. 참사 이후 자리에서 물러났던 그는 이후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국민의힘에서 2선 국회의원(경북 경주)과 당 최고위원을 지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작년 11월 최고위원에 선출된 이후에는 당시 철거민들을 “불법 폭력시위 전문꾼”이라 부르며 “용산 화재는 도심 테러 같은 심각한 불법 폭력시위”라는 망언을 뱉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공천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살인 진압작전의 책임자 김석기와 이런 자들에게 사회적으로 발붙일 공간을 마련해주는 국민의힘을 강력히 규탄하며, 김석기에 대한 공천배제를 촉구한다.
그러나 사회적 참사로서 용산참사의 본질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공공의 자원인 토지를 자본이 사유화해서 이윤을 독점하는 폭력 말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은 재개발·재건축 활성화가 서민경제 정책이라며 재개발 광풍을 국가차원에서 부채질했고, 현 서울시장으로 복귀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서울 구석구석에 뉴타운 사업으로 재개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오세훈 시장은 당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라며 용산정비창 부지를 포함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용산 일대에 재개발 투기의 복마전을 열었다. 대장동 사업과 같은 민관합동의 공모형 PF 투자개발 방식으로 진행된 당시 사업은 31조 규모의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 칭송되며 삼성물산 등 27개의 투자사들이 참여했으나, 2013년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기’로 밝혀지고 개발지구 지정이 해제되며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15년이 지나서도 현 정부의 태도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PF 개발사업의 대출과 부실 위험은 더욱 심해지는데, 지난 1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하며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며 이번 정부의 정책이 이명박 정부의 토건주의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심지어 그는 “주민들이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데 그걸 가로막는다면 정부도 한심한 상황”이라는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 오세훈 시장은 ‘한강르네상스 시즌2’ 사업과 미니 뉴타운 정책인 ‘모아타운’을 추진 중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용산정비창 부지 주택공급 계획도 공공임대는 약 20% 정도로 세입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개발주의 정책인 것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더 이상 이런 개발중심의 부동산 정책은 안 된다. 현재도 명동재개발2지구에서는 강제집행 저지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 또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육교 위에서 벌이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 소유주의 평균 실거주 비율은 32.7%로 세입자가 70%인 것이다. 토건 세력과 금융 세력이 합심해서 일으킨 재개발 광풍이 남기는 것은 세입자들과 주거 빈곤층의 주거불안이다. 녹색당은 15년 전 건설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을 기억하며, 생태와 삶의 공간을 빼앗는 토건·성장주의 세력에 맞서 부동산투기로 돈 버는 시대를 끝내고 모든 빌려쓰는 자들이 삶의 터전에서 철거되지 않는 시대를 열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