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 논평] COP28 종료에 부쳐 - 그린워싱의 홍보장이 된 자본주의적 기후위기 대응 체제를 넘어서야한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지난 11월 30일부터 진행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COP28)가 우려했던 것처럼 큰 한계를 보여준 채 끝났다. 계획된 일정을 하루 넘기고도 기존에 논의됐던 “화석연료의 폐지”를 최종 합의문에 표현하지 못했다.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이 있는 북반부 국가들의 그린워싱을 합리화하는 거대한 홍보장으로 변질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틀로는 더 이상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음을 인식해야할 시점이다.
회의 시작 전부터 이번 COP28와 개최국 아랍에미리트에 대해 거센 비판이 있었다. 세계 6위 석유 수출국이 회의를 개최한 것부터, 행사장 시설 건설과 관련해서는 폭염 속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 의혹까지 논란이 계속 됐다. 올초에는 아랍에미리트가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의 최고경영자인 술탄 알 자베르를 의장으로 지명해 국제사회의 비판도 받았다.
회의 기간중에도 이런 우려가 사실이었음이 확인됐다. 알 자베르 의장은 공식대담에서 화석연료 감축을 “전세계를 선사시대로 되돌려 놓는 행위”로 비유하며 “1.5도 온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화석연료 감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이나 시나리오는 없다”는 비과학적 망언을 뱉어 논란이 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오펙)과 화석연료 기업들은 공식행사장에서 회의 기간 내내 ‘화석연료를 지속가능하게 사용하자’며 존재하지도 않는 탄소포집저장 기술을 홍보했고, 오펙 사무총장은 공식서한을 통해 “화석연료에 대한 모든 (합의) 문구나 해법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결정적으로 최종 합의문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었던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phase out)”가 명시되지 못했다. 지난 COP27 합의문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 대신 “단계적 감축(phase down)”이라는 표현으로 약화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이번 회의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제시됐다. 그런데 관련 논의는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 등의 반대로 회의 종료 시한을 한참 넘겨서야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 화석연료로부터 전환(transition away)”한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정리됐다. 알 자베르 의장은 애써 “역사적” 합의라고 의미를 부여했으나 화석연료 문명과의 명확한 단절을 회피한 것일 뿐이다.
물론 이번 COP28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의 피해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에 대한 ‘손실과 피해 기금’은 작년 COP27에서 기금 조성에 대해서만 합의했는데, COP28 첫날 이 기금의 세부운영 결정문이 채택됐다. 또한 12월 2일에는 세계 화석 에너지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50개의 석유·가스 회사들이 메탄 배출량 80% 이상을 감축하는 내용의 ‘석유와 가스 탈탄소화 헌장’에 서명했고, 한국 정부도 100여개국이 참여중인 ‘재생에너지 3배 확대 결의안’에 참여하기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합의 역시 COP28이 보여준 극명한 한계를 생각하면 성과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채택된 ‘손실과 피해 기금’은 역사적 합의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손실 추정액인 4000억달러의 고작 0.2%(7억 달러)밖에 모으지 못했다. 이 금액도 보조금이 아니라 대출 형식으로 집행된다. 심지어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은 1750만달러, 약 227억원만을 출연했다.
‘탈탄소화 헌장’과 ‘재생에너지 3배 확대 결의안’도 마찬가지다. 헌장의 메탄 감축량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 전 세계 친환경 에너지 기술 투자액 중 1%만을 차지하는 참여 기업들이 실질적인 조처를 하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올해 1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30.2%에서 21.6%로 낮춘 윤석열 정부가 갑자기 계획을 바꿔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설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현실이 이러니 당연히 그린워싱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는 ‘핵을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지속불가능한 해법에만 열을 올렸다. 한국, 미국, 일본 등 22개국은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대신 2050년까지 핵발전 규모를 현재의 3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존재하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와 관련해서도 대안 없이 지역 주민들에게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핵발전량을 3배 늘리겠다니 기가 찰 뿐이다. 게다가 회의 기간 동안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핵발전과 수소 중심의 무탄소연합(CFA)이라는 기만적인 연합체를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글로벌 이행점검(GST)’ 보고서 등을 통해 주요국 가운데 탄소중립 목표대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는 국가가 단 한 곳도 없으며, 2030년까지 필요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30%밖에 달성할 수 없다는 등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2015년 파리협정의 1.5도 목표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파국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한계선이라는 의의를 인정받았지만 현재의 회의는 그러한 역할도 못하고 있으며, 탄소배출에 책임이 있는 북반구 국가들이 책임회피를 위한 ‘알리바이’로 기능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COP29의 개최지로 또 다른 오펙 회원국인 아제르바이잔이 유력하다고 한다. 이번 회의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발효 이듬해인 1995년 처음 시작하여 30여 년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적 논의 틀로 기능해왔다. 이번 COP28은 강제성 없는 자본주의적 기후위기 대응의 파산을 명확히 보여준 상징적인 자리로 이를 통한 국제적 논의가 화석연료 퇴출과 제대로 된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화석연료 문명과 성장주의적 삶의 양식을 넘어 새로운 삶과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이 함께 새로운 대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할 때다. 녹색당도 새로운 대안의 길을 만들기 위한 단초가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