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0 논평] 2만 개의 무덤 앞에 중립은 없다.
가자지구에서 짧았던 일주일 간의 휴전이 끝난 지 2주가 넘었다. 이스라엘은 대다수의 민간인들이 대피한 가자지구 남부에까지 임시 휴전 이후보다 훨씬 잔혹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가자지구의 상황은 현대의 그 어떤 전쟁지역보다 참혹하다. 녹색당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 어떤 말보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당장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와 군사점령, 집단학살을 멈추고, 완전한 휴전에 돌입하라고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11월 포로교환과 휴전이 발표됐을 때 전 세계는 환영을 표명했지만, 동시에 휴전이 끝나기 전부터도 휴전 이후에 대한 우려가 컸다. 휴전에 돌입하자 집으로 돌아가는 가자지구 난민들의 행복한 얼굴이 언론의 1면을 장식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임시 휴전이 끝나면 다시 맹공격을 이어갈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은 휴전 초반 나흘 동안 팔레스타인 수감자 150여명을 석방하며, 동시에 서안지구에서만 130명 이상을 체포했다. 여전히 7,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이 수감돼있고, 이 중 80% 가량이 기소나 재판 없이 수감돼있다. 최근까지 서안지구의 불법 정착촌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우려대로 휴전이 끝난 직후 이스라엘군은 24시간 만에 칸유니스 등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들에게 안전하다고 했던 남부 지역에 400건 이상 공격을 퍼부었고, 그 결과 7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현재 가자지구의 총 사망자는 20,000명에 이른다. 공공 및 의료체계가 거의 붕괴된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상당수의 사망자는 잔해에서 수습도 되지 않았고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가자지구 인구의 85% 이상이 난민이다. 음용수는 한 달 전부터 가자지구 인구의 5%에 밖에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이고, 대다수의 민간인들이 말 그대로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보다 더 많은 민간인이 간염, 홍역 등의 전염병 창궐로 사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 10일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18일 발간된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는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응급 구호품을 통제하며 기아(starvation)를 전쟁무기로 사용하는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광기는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최대 우방국인 미국까지 최소한의 민간인 보호 조치를 하라고 촉구하는데, 팔레스타인 민중 자체를 비인간화하며 박멸하려는 집착을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가자지구 지하터널에 해수를 주입해 하마스를 괴멸시키겠다고 한다. 이스라엘 포로들의 생명과 주변 지역의 농지오염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반나체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총을 들고 투항하도록 연출한 유출 영상이 이스라엘군이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고, 반나체의 민간인들이 손발이 묶여 알 수 없는 곳으로 연행되는 영상도 나왔다. 이스라엘군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채널에 자신들의 작전을 “바퀴벌레 제거 중”이라고 홍보 중이다. 이 정도면 이스라엘의 행동은 단순한 학살이 아니라 가학적 광기라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다.
지난 75년 동안, 그리고 현재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만행은 미국의 흔들리지 않는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6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34년 만에 유엔 헌장 99조를 발동해 안전보장이사회에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 채택을 촉구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안보리 결의안은 채택되지 못했다. 이후 결의안은 유엔총회에서 153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자인 미 국방부는 이번 달에도 이스라엘의 무기 지원을 위해 의회 승인을 우회하는 긴급조항을 발동했다. 이스라엘군의 인공지능 시스템 하브소라(Habsora, 히브리어로 “복음”이라는 뜻)를 통한 대량폭격과 학살은 미국 정보기관이 제공하는 군사정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마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민중에 대한 학살이 심각해지자 겉으로는 짐짓 인권을 우려하는 척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절대 우방으로 두고 중동을 관리하는 미국의 중동정책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팔레스타인 옹호에 대한 혐오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시온주의 자본의 압박으로 하버드 등 주요 대학의 총장들을 의회 청문회에 불러 세우는 것도 부족해 이들에 대한 사퇴 압박까지 가해지고, 언론과 교육계에 대한 지원 철회 같은 갖은 협박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서도 최근 독일녹색당 산하 하인리히-뵐 재단은 “가자지구를 나치 독일의 ‘유대인 게토’에 비유”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제정한 한나아렌트상의 수상자인 유대계 작가 마샤 게센의 시상식을 취소했다.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 집회에서 팔레스타인 연대를 외쳤다가 “분열”을 일으킨다며 마이크를 빼앗겼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집회 직후 “앞으로 툰베리의 의견에 동조하는 누구든 테러 지지자로 간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한국녹색당에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워질 것이다’라는 표현이 “증오 표현”이라며 해당 표현이 담긴 현수막을 철거하라며 겁박하기도 했다.
툰베리는 최근 <더가디언>에 “인권 없는 기후정의 운동은 없다”며 기후정의 운동은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과 같은 곳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우리 녹색당도 이러한 혐오에 단호히 맞서며 기후정의 운동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은 동일한 지향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학살의 실행자인 이스라엘 정부와 학살의 가장 큰 조력자인 미국 정부, 이를 지원 및 방조하는 한국 정부 모두 당장 전쟁기계를 멈추라고 명령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얘기하는 것 같은 ‘지속가능한 무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2만개의 무덤 앞에 중립도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