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논평] 절반의 승리, 헌재가 멈춰 선 벽을 무너뜨리자 - 기후헌법소원 헌법불합치 결정에 부쳐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법임에도,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본 것이다. 녹색당은 헌재의 이번 결정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의 책무 인정에 있어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한다. 이번 헌재 결정을 얻기 위해서 오랫동안 애써 온, 청소년기후행동을 비롯한 여러 소송 참가자와 단체 그리고 법률가들의 노고에 감사 인사 드린다. 소송 참가단의 일원으로서 녹색당도 최선을 다했다.
헌법재판소는 기후소송 헌법소원 사건에서 탄소중립법의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법령은 2030년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한 양이라고 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이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하고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이다. 헌재는 기후위기의 위험에 대해, 기후변화로 인하여 초래되는 극단적 날씨, 물 부족, 식량부족, 해양 산성화, 해수면 상승, 생태계 붕괴 등의 현상으로 인한 피해의 위험이라고 정의하였고, 국가는 기후변화로 인하여 생활의 기반이 되는 제반 환경이 훼손되고 생명・신체의 안전 등을 위협하는 위험상황에 대응하여 보호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강조해야 할 대목이다.
헌재가 구체적으로 위헌이라고 결정한 부분은, 법이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정하고 있을 뿐, 2031년 이후 2050년에 이르기까지의 감축목표에 관하여 아무런 정량적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점이다. 이는 “2050년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없으므로,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서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국가는 보호조치를 마련함에 있어 미래의 국민의 자유 보장과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의 평등한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는 미래의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2030년 감축목표 자체가 헌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실망스러운 일이다. 자신이 한 앞의 말을 뒤집는, 현실유지적인 판단이다. 절반의 승리에도 못미치는 판결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 탄소예산 배분에 관해 국가적으로 공인될 만한 객관적인 도출 방식이 정해져 있지 아니한 상황에서, 헌재가 어떤 특정한 추정방식과 평가요소들을 채택하여 국회와 정부가 정한 구체적인 수치가 부적합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의 환경자문위원회가 인구비례로 독일의 탄소예산을 산정하여 헌재에 제출한 사실과 대비된다. 한국 정부는 독일 정부와 달리 탄소예산을 산정한 적이 없고, 이것이 오히려 빌미가 되어 헌재가 적극적인 판단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했다.
우리는 헌재의 판단이 권력분립의 원칙 상 국회와 정부의 재량을 존중한 것이지 2030 감축목표가 정당하다고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오히려 우리는 판결문이 “위험상황으로서의 기후위기의 성격상 미래의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의욕적으로 감축목표를 정하고 계속 진전시켜야 한다”고 하였고, “현재 설정된 2030년의 감축목표를 달성하고 2031년 이후의 감축목표를 강화하기 위하여 사전에 필요하고 가능한 조치를 다하지 않으면, 2031년 이후의 감축부담은 더욱 증가하여 충분한 감축목표 설정과 이행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판시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독일의 사례를 환기해볼 필요가 있다. 헌재의 결정은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2021년 3월에 내린 위헌결정과 같은 취지이다. 독일 정부와 의회는 결정 5개월 뒤에 탄소중립 시기를 2045년으로 앞당기고, 2030년 목표를 10% 상향 조정하는 내용으로 법 개정을 마쳤다. 사법부는 기본권 보호를 위한 조치가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었는지를 기준으로 위헌여부를 심사하지만, 입법부와 행정부는 이와 달리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할 헌법상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도 독일의 선례와 같이 결정의 취지에 따라 필요하고 가능한 조치를 다해야 할 것이다. 녹색당은 국회와 정부에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실패한 기후대응 체제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기를 촉구한다.
한편 녹색당은 헌재가 멈춰 선 곳이 바로 한국사회가 멈춰서 있는 바로 그 지점이라 생각한다. 생명보다는 이윤을 앞세우는데 여념이 없으며 그것을 폐쇄적 국가주의로 정당화는 정부와 국회를 헌재는 넘어서지 못했다. 헌재는 그들과 함께 기후위기의 진짜 원인인 불평등과 부정의에 침묵했다. 특히 2030 NDC 감축 목표가 부족하다는 것에 침묵하면서, 국제적인 기후 부정의와 불평등에 침묵했다. 탄소 식민주의에 동조한 것이다. 녹색당은 헌재 판결이 멈춰선 그 지점을 넘어서,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현재의 자본주의 성장체제를 변혁하는 것이 기후위기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사회적 상식으로 만들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